대가야 시대 가야국의 음악과 우륵에 대한 음악적 내용은 한국음악학계에 소개된것으로 ,우륵 관련 음악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이러한 음악적 연구결과를 근거로 의령 문화에 대한 발전 방향의 근거로 삼고자 함이다. ( 2015 우륵 자료집 본문 발췌)

악성 우륵 (于勒)

생애와 업적

서력 480 년

대가야 연맹의 사이기국 성열현(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길지에서 귀족으로 탄생하다. (문헌 1)

505년(25세)

대가야 가실왕의 부름믈 받고 수도 상가라도(고령)로

진출하여 궁중악사로서 대가야 대악을 집대성할

기초 정리와 12현금의 가야금을 제작하고 연주하다.

(정리)

510년(30세)

가실왕의 명을 받들어 각 지역을 상징하는 가야금

12곡을 작곡하고 연주하다. (문헌 1)

532(52세)

법흥왕 19년 . 대가야 수도 고령에서 활동하면서

대가야 樂의 터전을 마련하여 오는 동안에 동년

금관가야가 멸망하다. (문헌 2)

540년(60세)

진흥왕 1년 제자 泥文과 함께 가야금을 소지하고

신라로 망명하여 국원(충주)에 안착하여 탄금

활동을 하면서 제자를 양성함.  (문헌 1)

544년(64세)

진흥왕 5년 신라 중원 소경(충주) 설치. (문헌 2)

551년(71세)

진흥왕 12년 앙성(청주)에서 진흥왕을 알현하고 

하림궁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궁중 악사로

할동하다. (문헌 2)

552년(72세)

진흥왕 13년 관리이자 악사인 階古에게는 琴을

法知에게는 노래를 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으며

신라 대악의 기초를 닦고 대가야 12곡중 5곡을

신라 악으로 개편하였으며 총 185곡의 곡이

제작되었음. (문헌 2)

562년(82세)

진흥왕 23년 대가야가 멸망한다.(문헌 2)

565년(85세)

진흥응 26년 악성 우륵 망명지 국원(충주)에서

서거하다. (추정) - 서거한 후 탄생지인 사이기국

성열현의 대 포구인 부림 박진으로 운구하여

왕족의 예우로 장례한 후 경산 고분능을 축조하여

모신것으로 추정.